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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장 경영 이야기

위기의 중국 사업, 이순신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 (上)

by 중사남 2020. 5. 1.

위기의 중국 사업, 이순신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 (上)

 

며칠 전 4월 28일은 우리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로 뽑힌 성웅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 서울 간천동(지금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초계 변씨는 남산 밑자락 마른내 (지금 충무로 지역)에서 셋째 이순신을 낳았다. 영화의 거리로 잘 알려진 충무로 (忠武路)가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공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순신 장군의 고향을 아산으로 아시는 분이 많다. 장군이 아산에서 생활했고 아산에 현충사가 있어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만,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사실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위기의 중국 사업, 이순신 장군에게 묻다 

 

독립 운동가인 함석헌 선생님은 이순신 장군을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그런 이순신이 한국인에게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임진왜란때 한 번의 패배도 없이 23전 23승이라는 백전백승의 신화를 만들어 냈기 때문일까? 그것도 맞지만, 힘들고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전쟁에서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늘을 울린 나라와 국민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쓴 난중일기를 보면 그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400여년전 임진왜란과 같은 총칼을 사용하는 무력(武力) 전쟁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경제(經濟)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및 중국 기업과 피할 수 없는 무한 경쟁을 해야 하고,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쟁과 성공해야 하는 비즈니스의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필요한 그 무엇인가를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은 시간이 지났지만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1.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한 리더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년 전 조선은 200여 년의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의 시대였다. 전쟁에 필요한 병력과 물자는 부족했고, 군기가 해이해졌다. 조선은 전쟁에 대한 준비가 소홀한 반면에, 일본군은 서양의 조총 기술을 익히고 무장하는 등 치밀하게 전쟁 준비를 했다. 한마디로 이미 싸우기 전에 조선이 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2개월 전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것이었다. 부임하자마자 관할 지역의 지형과 조류를 조사하고 전투에 이용하는 요충지를 파악했다. 또한 흩어진 병력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또한 이순신은 외부의 적의 규모와 이동 상황을 세밀히 파악했다. 이렇듯 주어진 환경에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조건을 하나씩 준비해 갔다. 

 

내가 2016년 부임한 중국 법인은 4년동안 3번이나 적자가 난 상황이었다. 게다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품을 만드는 생산법인을 맡게 되었다. 이전에 중국 근무를 할 때에는 과장과 부장의 역할과 책임만 지면 되었지만, 지금은 법인장으로 적자 회사를 흑자로 만들어야 하는 목표와 책임을 져야 했다.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있는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출근을 영업부 사무실로 했다. 우선 흑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영업부문을 직접 챙기고, 내용을 파악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약 3개월 기간 동안 제품별로 수익성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익성이 낮은 제품 (마진이 낮고, 장거리 이송으로 물류비 높음)고에 대해서는 고객사의 협조를 통해 정리를 했고, 수익성이 좋은 제품에 대해서는 투자를 통해 수주를 더욱더 확대시켰다. 미숙하나마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2. 전쟁중에도 멈추지 않은 학습하는 리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오해하는 것중 하나는 이순신 장군이 원래부터 무관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대대로 문인을 배출한 요즘 말로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서삼경>, <소학>등으로 착실히 공부했고, 벼슬을 한 이후에도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순신은 20세까지 문과를 준비하다가 무과로 전향해서 자연스럽게 문무를 겸비한 장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학습에 대한 욕심은 전쟁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난중일기>의 기록을 보면 장군이 부지런히 공부하는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전쟁에 대한 아이디어와 통찰을 얻어 부하들을 슬기롭게 다스리고 전쟁에 대하 전략을 연구했다. 그 예로 송나라 역사서인 <유기전>을 읽고 '죽음 속에서 살길을 찾다'라는 의미를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死中求生 必死卽生)으로 바꿔 병사에게 사용하기도 했다.   

 

나는 학부를 공대 졸업했고, 학문적으로 '경영'을 공부하지는 못했다. 영업부장 시절부터 중국에서 최고 경영자인 법인장의 자리를 꿈꾸었다. '중국'과 '경영'에 대해 책들을 열심히 읽었고, 현장에 적용해 보기도 했다. 두 번째 중국 근무 후 귀국해서는 체계적인 경영 공부를 하기 위해 경영지도사 (마케팅)에 도전하기로 했다.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해서 5개월 동안 열심히 도서관과 카페를 이용하여 합격을 했다. 같이 공부한 스터티 멤버 20명 중에 나이가 3번째로 많았지만, 목표가 있어 재미있게 후배들과 공부한 것이 생각난다. 

 

다시 중국에 법인장으로 근무한 후에도, 앞서 이야기한 중국 법인을 중국에서 경쟁력이 있는 법인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책들을 보고 연구하고 현장에 적용했다. 물론 책에서 배운 내용 중 적용 가능한 것들에 대해 현장에 적용하여, 실패도 맛보기도 하고, 적지 않은 것들은 현장에 잘 작용되기도 했다. 

 

중국 사업, 이순신 장군의 가르침을 배우자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비즈니스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반등의 기미조차 없다. 그러나 예측 불허의 경제 전쟁을 헤쳐나갈 경영자들이여.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리더십을 배워 앞으로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중국 사업을 착실히 준비하자.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최악의 상황에서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 그대들은 이순신 장군의 휼륭한 후예가 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한 번에 다루기도 힘들어 하편에 한번 더 다룹니다. 하편은 부제가 " 내가 명량 영화를 7번이나 본 이유입니다. 많은 기대 해주세요.   

 

P.S : 이글을 위해 이순신 장군 관련해서 내가 보고 참고한 책들   

1. 리더십, 난중일기에 묻다 (김윤태 지음) . 2. 이순신 승리의 리더십 (임원빈 지음)

3. 경제 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4. 전쟁의 신 이순신 (설민석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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