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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장 경영 이야기

위기의 중국 사업, 이순신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 (下)_내가 명량 영화를 7번 본 이유

by 중사남 2020. 5. 4.

위기의 중국 사업, 이순신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 ()_내가 명량 영화를 7번 본 이유

 

명량 영화를 극장에서 3번 그리고 TV영화를 4번이나 본 것 같다. 왜 이리도 많이 영화를 본 이유가 궁금한가? 내가 명량을 지금도 TV 영화에서 본 이유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100분의 1이라도 본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전쟁과 사업에서의 최종 목적은 승리이며,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연전연승하는 비결은 무엇인지 배우고 싶었다. 중국에서 12년 동안 비즈니스를 했지만, 매 순간마다 도전이었고, 매일 다양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지금 한국에 돌아와 그때를 생각하면 문득 그립기도 하지만, 만약 다시 중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많이 생각하고 결정할 것 같다. 중국 법인을 책임진 최고 책임자로서 이순신 장군은 내가 본받고 싶은 완벽한 경영자이자 따뜻한 멘토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순신 장군의 세 번째 리더십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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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3. 탁월한 군사 전문성을 발휘하다. 

 

동양 병법서 중 최고로 꼽히는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이상적인 장수는 지식, 신의, 사랑, 용기, 위엄의 다섯 가지 오덕(五德)을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 전투에서 학익진(鶴翼陣) 진법을 구사하여 큰 승리를 거둔다. 학익진은 이름 그대로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으로 군대의 진형을 짜는 것으로, 육지 전투에서 사용한 학익진을 해전에 도입하여 당시 조선 수군의 한계를 극복했다. 학익진 전법은 기존의 해전 전투 방식인 배를 맞대고 넘어가 총칼로 싸우는 백병전의 기존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학익진 전법과 더불어 우수한 총포, 우리의 자랑스러운 거북선도 장군의 탁월한 군사 전문성과 응용력이 대단히 뛰어남을 보여준다.

 

내가 맡은 법인은 부품을 생산하는 제조법인이었다. 이전에 중국에 근무하면서 경험해 보지 못해,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일 3번 이상 현장에 가서 설비도 보고 직원도 만났다. 이전에 만들어 놓은 영업, 기술, 생산, 재무 등 자료를 꼼꼼히 살펴봤다. 모르는 사항은 담당 부장, 팀장에게 직접 물어보고 확인했다. 현장을 자주 방문하여 설비를 알게 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직원과도 친하게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고 적용할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4. 몸소 원칙을 지킨 따뜻한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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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원칙이 제대로 서려면 직원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경영자, 리더가 원칙을 존중하고 지키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경영자가 원칙을 지킬 때 구성원들도 그 모습을 보고 존경하면서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삶은 원칙의 본보기가 되는 삶이었다. 관행이나 편법과 타협하지 않았고, 전장에서도 엄격히 규율을 지켰다. 늘 정직하고 청렴했으며, 부하로서 상사를 대하거나 상사로서 부하를 대할 때 변함이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곧은 성품으로 시기를 받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이순신 장군도 여느 사람과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자식을 아끼는 마음은 어느 부모님과 같았다. 한마디로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마음가짐을 가진 진정한 우리 시대의 영원한 멘토라 할 수 있다.

 

회사의 구성원 모두는 하루 근무시간을 온전히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회사에 출근해 법인장 사무실로 오면 문을 항상 열어두었다. 직원이 언제든지 나의 사무실을 방문해도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나 스스로 온전히 회사 업무를 보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었다. 아픈 날을 제외하고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고, 매일을 최선을 다해 회사를 운영했다고 자부한다. 회사에 나의 열정과 힘을 모두 쏟아부었다. 법인장 3년 차쯤에 비로소 사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가끔씩 사외 행사도 참석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쓰면서 나의 적용 사례도 함께 이야기했다. 여기서 밝혀 둘 것은 내가 적용한 사례 중 잘한 점도 있지만, 많이 부족한 점이  더 많았다. 따뜻함과 엄격함의 원칙의 균형을 맞지 않아, 늘 노심초사하고 우왕좌왕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심의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나에게 중국 비즈니스, 중국 법인을 운영하는 것은 언제나 도전이었고,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길 가능성이 1%도 안 되는 전쟁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늘 도전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이순신 장군을 보면서 위안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명량 영화를 지금도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에 이순신 장군이 살아 계신다면 술 한잔 드리면서  "위기의 중국 사업, 어떻게 돌파하고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P.S : 위기의 중국 사업, 이순신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 (上). 안 보신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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